대선 전날이었던 12월 18일, 서울 한남동본당 신자들이 어김없이 성당 뒤편 고갯길을 올랐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오지만 밑반찬 배달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옮기는 발걸음마다 힘이 붙는다. 고갯길을 다 오르자 나뭇가지 끝에 앉아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신자들을 반긴다. 번지수가 없어진 성북동 비둘기처럼, 한남동 비둘기가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하늘을 ‘휘이’ 돌며 하늘에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 한남동본당의 화요일 아침
서울 한남동본당(주임 이창준 신부)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사회사목 시범본당 협약을 맺은 지 일주년이 지났다. 2011년 12월, 본당은 사회사목 시범본당으로 신자들의 재능기부 신청을 받고, 카리타스 방과 후 공부방과 독거어르신 대상 밑반찬 전달, 어르신 생신·축일 잔칫상, 노인정 점심 제공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18일, 오늘은 본당이 성당 뒤편 언덕에 사는 어르신들을 위한 밑반찬 전달과 그들의 생신·축일 잔칫상을 마련하는 날이다. 오전 8시가 되자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나이 60을 넘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한 봉사자가 묵묵히 밀대를 들어 성당 부엌을 청소한다. 다른 봉사자들은 재료를 꺼내 밑반찬 만들기에 한창이다.
어르신들에게 전달할 반찬은 청포묵과 숙주나물, 김치, 떡갈비 등이다. 어르신들의 치아가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해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고 마련한 정갈한 반찬이다. 매주 화요일 아침, 한남동본당 신자들의 하루는 이처럼 바쁘게 시작된다. 봉사자 성금순(모니카·64)씨가 말했다.
“한남동이라고 하면 대부분 부촌(富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고개를 올라가면 독거어르신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거든. 그래서 비신자, 신자 가리지 않고 밑반찬을 전달해드려요. 밑반찬을 전달 받으시기 전까지는 고추장 하나에 밥을 비벼 그냥 해결하시는 분도 많았어요.”
본당은 밑반찬 전달사업을 시작하기 전, 기초조사를 꼼꼼히 했다. 인근 기관들과 연계해 대상 추천을 받고, 차상위계층 가운데서도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직접 가정을 방문했다. 본당 인근에 살고 있는 어르신 12명이 밑반찬 도움을 필요로 했다.
봉사자들이 요리한 밑반찬을 ‘한남동성당’이라고 적힌 반찬통에 담는다. 빵과 과일도 도시락과 함께 예쁜 가방에 담았다. 요리를 마친 봉사자 이행자(마리아·74)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허리수술을 했지만 어떻게 더 누워있을 수 있겠어요. 이렇게 일어나 봉사하는 게 훨씬 나아요. 나도 고개 너머 있던 도깨비시장에서 30여년을 장사한 사람이에요. 순대장사도 하고, 야채장사도 하고.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집 다 팔고 이사를 가더라고. 사람들 떠날 때 나도 장사를 접었죠. 이제 어르신들 빼고 몇 집 안 남아 있어.”
어르신의 마음은 어르신이 안다. 이행자 할머니와 봉사자들이 매주 화요일 성당에 나와 밑반찬을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어르신들을 만나러 갑니다
“주님,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밑반찬이 준비되자 분홍색 앞치마를 두른 이정희 수녀(바뇌·한남동본당 사회사목 담당)와 봉사자들이 모여 기도로 회의를 시작한다. 반찬을 배달하기 위해 조가 나눠지고, 신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봉사자 석지원(아녜스)·이명희(마르티나)씨와 겨울방학을 맞아 성당을 찾은 태철민(엘제아리오) 신학생이 함께 배달 길에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치고 봉사자들이 도시락을 들고 고갯길을 오른다. 한남동에 이런 오르막과 좁은 길이 있었나 싶다. 밤새 얼어붙은 길을 조심히 디디며 김교현(요한·65) 어르신의 집을 찾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어르신이 봉사자들을 맞아주었다.
도시락을 전달하자마자 봉사자들의 손이 바쁘다. 봉사자들은 주방에 쌓인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신학생은 닫히지 않는 냉장고 문을 테이프로 감아 닫히도록 해두었다. 어르신의 작은 방에는 성모상이 미소를 머금은 채 두 팔을 가득 벌리고 서 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요한 형제님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술도 조금만 드시고 식사 잘 하실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아멘.”
고갯길을 좀 더 올라가자 이슬람사원이 우뚝 서 있다. 골목 어귀에는 트랜스젠더 바와 술집들이 즐비하다. 누가 그려 놓았을까. 장미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진 계단을 한참 올라 숨을 돌리니 고통의 신비가 따로 없다. 다시 길을 한참 올라 높은 빌딩 앞에 섰다. 연창훈(78) 어르신이 묵고 있는 고시원은 빌딩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606호 방문을 두드리자 한 평 남짓한 작은 고시원 방 의자에 앉아 봉사자들을 맞아주는 어르신이 보인다. 어르신이 밑반찬을 받아 작은 냉장고에 약봉지와 함께 소중히 넣어두었다. 봉사자들이 모두 들어갈 수 없어 한 봉사자가 들어가 어르신 옷을 챙겨 함께 나왔다. 어르신을 모시고 성당에 가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성당에는 지금 축일과 생일을 맞는 어르신들의 잔칫상이 차려져 있을 터다. 생일잔치에 가자는 말에 털모자와 지팡이를 들고 나오는 어르신의 발걸음이 가볍다.
■ 어르신들의 축일·생일 잔칫상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플루트 소리와 함께 어르신들이 성당에 입장했다. 식탁 위에 놓인 꽃과 초와 케이크, 고깔이 7명의 어르신을 맞이한다. 비신자 어르신은 생일을, 신자 어르신은 축일을 챙겨드린다. 어르신들이 고깔을 쓰고 아기 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어르신들, 오래 오래 사세요.”
한 봉사자의 인사가 끝나자 어르신들이 다 함께 케이크의 촛불을 끈다. 봉사자는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어 한 분씩 인화해 액자에 담아드렸다. 어르신의 이름 앞에 근사한 생일상이 차려졌다. 한 어르신이 ‘오랜만에 보는 내 이름 석자’라고 말했다. 본당 주임 이창준 신부가 어르신들을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일일이 생일카드를 전달했다.
“어르신, 음식 다 잡수셨으면 그냥 가시지 마시고 생신이니까 고깔 한 번 더 써보세요.”
봉사자의 권유에 어르신 한 분이 ‘응’하며 망설이지 않고 고깔을 쓰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모두가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