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담화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1846년 8월 26일 옥중 서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21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20년 11월 29일(대림 제1주일)부터 2021년 11월 27일(대림 제1주일 전날)까지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으로 선포합니다. 이번 희년은 한국 교회의 귀중한 유산인 순교 영성, 곧 순교자들이 온 삶을 바쳐 지킨 신앙을 삶의 중심 자리에 굳건히 세우고, 신앙이 주는 참기쁨을 나누는 초대의 잔치입니다. 희년을 보내면서 모든 신자가 순교 영성을 본받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의 가치가 더욱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이번 희년의 주제는 김대건 신부님께서 옥중 취조 때 받으셨던 질문인 동시에, 이 시대가 우리 신앙인 각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죽음의 두려움을 과감히 떨쳐 버리신 성 김대건 신부님의 이러한 놀라운 신앙 고백은, 하느님만이 우리 삶의 전부이며 그분에 대한 신앙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보장한다는 확신을 심어 줍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이신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우리도 이웃에게 “저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증거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천주교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초대하십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 신앙 선조들은 차별이 엄격하던 신분 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평등사상을 실천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였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성 김대건 신부님을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한 이유도, 김대건 신부님으로 대표되는 신앙 공동체가 복음과 신앙을 실천에 옮기면서 평등사상과 박애 정신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위대함과 한계를 동시에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은,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있지 않고, 나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며 모든 것의 근원이신 주님께 의탁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진정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 가운데 강함을, 가난함 가운데 부유함을, 절망 가운데 희망을 심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되실 때, 분쟁과 시기, 이기심과 분열을 사라지게 하시고, 행동하는 기도를 통하여 평화가 깃들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 아래 피조물의 존엄성을 사랑으로 지키는 모든 노력은, 우리 순교 성인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에 닿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희년을 지내는 동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하느님을 사랑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을 우리 삶에 깊이 새깁시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증거하신 순교자들의 길을 우리도 따라갑시다. 물질적 풍요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세상의 유혹을 거슬러, 성 김대건 신부님처럼,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감응하며 감사와 자비의 삶을 살아갑시다.
지금 우리의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확산,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 경제적 양극화 등의 위기를 겪는 가운데, 교회 내적으로 신앙의 나태함, 새로운 무신론과 기술 만능주의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0년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는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보여 주신 용기 있는 신앙 고백은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제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 우리도 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을 본받아 삶과 행동으로 자신 있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시다. 우리 각자가 지고 있는 십자가와 세상이 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요한 14,6 참조) 세상에 증거하도록 일상에서부터 용기를 내어 실천해 갑시다. 우리의 확고한 신앙 고백과 실천을 통하여 우리 이웃에게, 온 나라에, 온 세상에 희년의 기쁨이 넘쳐흐르도록 합시다.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이하며
2020년 11월 29일(대림 제1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 용 훈 주교